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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강화 모녀 살인사건 총정리

지난 2008년에 일어난 '강화 모녀 살인사건'을 기억하시는가요? 강화 모녀 살인사건의 전말에서부터 최대한 완벽하게 정리할려고 합니다.

두 모녀인 47세 윤복희씨와 달인 16세 김선영양의 모녀의 시신이 2008년 7월 1일 오전 11시경에 강화도 하점면 창우리 해안가 제방 갈대숲에서 발견이 된 사건입니다.

당시 모습은 엄마인 윤복희씨는 누운채였고, 딸은 엎드린 채로 발견이 되었으며, 이 두 모녀의 시신은 심각할 정도로 부패가 된 채 발견이 되어서 얼굴의 형체를 쉽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읍니다.

 

이에 국과수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로 이 모녀는 누군가에 의해서 목이 졸려서 살해가 된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모녀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강화도 창후리 바닷가 해안 둑 아래 수로로 도로에서 1km가량을 들어가야지만 하는 외진 곳이었읍니다.

이곳은 겨우 승용차 1대가 지나갈 수 있는 비좁은 길이었읍니다.

이들 윤복희 모녀는 6월 17일 강화의 국민은행에서 현금 1억원을 인출한 후 실종되었읍니다.

 

이들 윤복희 모녀가 실종된 당일의 행적에는 수상한 점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초기 수사에서 '종교적인 신념에 의한 단순 잠적'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 사이 범인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유유히 빠져나갔고, 이 모녀의 시신은 한적한 바닷가에 버려진채로 썩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이 되면서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양 전단지를 만들고, 현금 1억원을 인출할 때에 승용차에 타고 있던 남성 2명중 1명의 몽타주를 만들어서 수배를하게 됩니다.

 

당시 경찰의 용의선상에 이들 외에 또 다른 한명이 올랐는데, 50대 여성인 K 목사였읍니다.

K씨는 윤복희 모녀가 실종되던 날 모녀와 수차례의 통화를 한 기록이 있었으며, 실종이 된 다음날에는 은행에다가 전화를 걸어서 '현금이 얼마나 인출되었는가?'를 물었던 인물입니다.

K여목사는 모녀의 실종후에도 윤복희씨와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한것으로 드러납니다. 또한 경찰의 수사와는 별개로 기자 한명이 윤복희씨 주변 인물들을 캐내고 다녔읍니다.

가족과 친척, 이웃과 친구, 종교단체의 연루성등을 말이죠. 그리고 윤복희 모녀가 살해당한 단서는 세가지였읍니다.

종교와 이웃집 여자인 K씨,그리고 돈이었읍니다. 이 세가지를 연결하다 보니 그 가운데에는 K 여목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윤복희 모녀가 살던 송해면 하도리 마을은 경주 김씨의 집성촌이라고 합니다. 백이십가구 대부분이 친인척 관계로 얽혀져 있었읍니다.

윤복희씨의 시댁은 대대로 이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2008년 4월 1일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시어머니와 딸과 함께 살고 있었고,윤씨의 아들은 군 복무 중이었다고 합니다.

윤씨는 남편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집근처에서 가든을 운영하던 친척 무속인과 사이가 가까웠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무속인과 가깝게 지내던 윤씨는 무속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윤복희씨 주변인들에 의하면 '니가 무속신앙을 사졌는데 왜 남편이 죽노?'라면서 무속인 친척과의 관계를 강압적으로 끊었다고 합니다.

후에 가까워지게 된 인물이 윤복희씨의 집에서 3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사는 K씨였읍니다. K씨는 자신을 목사라고 하면서 다녔고, 예언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당시 강화읍에서 여성옷을 판매하던 윤복희씨의 친구인 B씨는 윤씨가 '4월경에 복희와 K목사라는 여자가 찾아왔다고 기억했읍니다.

그 여자가 복희가 어느 교회에 나가면 되겠느냐'고 하자 ㅇ교회를 추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윤복희씨는 4월 20일 ㅇ교회에 등록했다고 합니다.

그후에도 윤씨는 ㅇ교회에 다니면서 자신을 K목사라고 하는 자와 매주 화요일 오후 4시에 정기적인 가정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의 장소는 자신과 K씨의 집을 번갈아 가면서 드렸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도 복희의 집에서 자주 예배가 있었다고 증언했읍니다. 이들의 구성원은 6명 정도로 각각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윤씨의 친구인 B씨는 '복히는 사는데 여유가 있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많이 따랐고, 가정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복희가 소개한 사람들로,화요 가정예배가 있을때에는 직접 전화를 해 헌금을 가져오라는 말도 했어요"라고 증언했읍니다.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한 여성 K씨는 ㅇ교회에 출석을하지 않음에도 그 교회 목회자나 신도들과 교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ㅇ교회 관계자가 말하기를 'K씨에 대한 조사를 해보니 목사가 아니고 'ㅅ종교의 신자'였다는 말을 합니다.

K씨는 윤씨가 재산이 많다는 것을 알고나서 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읍니다. 복희씨의 친구인 B씨는 복희가 몇번이나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를 의논을 햇고, K시가 재산을 따져보더니 25억 가량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될지모르니 복희씨의 재산을 자녀들과 공동소유로 해야한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5월경에는 통장 사본을 복사해서 B씨에게 가져와서 어찌하면 좋겠노?라고 상의했다고 합니다.

B씨가 기억하는 당시 통장 잔고는 4억 7천만원이었다고 합니다. B씨는 복희씨에게 여러 은행에다가 분산 예금을 하는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런줄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목사를 사칭한 K씨가 여러 은행에 넣으면 귀찮다고 국민은행에 예치하는것이 편하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윤복희씨의 씀씀이는 컷다고 B씨는 기억합니다. 누가보아도 윤씨를 아는 사람은 윤씨가 재산가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범인은 다른곳에 있었다.

윤복희씨는 남편이 사망한 후 여러차례 도둑을 맞았다고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이곳은 김씨 집성촌이라서 이니셜 K가 자주 등장합니다.

시숙인 K시는 도둑을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당시 경찰에 신고를하지 않았던것 같다라고 기억합니다. 후에 납치가 되기전에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려고했으나 하지 못하고 실종 당일에 설치하려고 했었다~고 기억합니다.

친구인 B씨에 말에 의하면 도둑 맞은 물건은 패물인 다이아노든 반지라고 말합니다. 경찰은 이러한 증언들을 토대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이던중 사건과 관련이 된 유력한 증언을 확보하게 됩니다.

실종 당일에 마을어귀에 쏘나타 차량 한대가 서 있다가 실종 당일 자취를 감추었다는 증언을 확보합니다.

쏘나타 차량의 차주는 이웃집 청년인 26살의 안은일이었읍니다. 안은일은 모녀가 실종된 후에 차량을 교체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경찰의 정보망에 걸려든 것입니다.

그즉시 경찰은 안은일의 통화내역을 조회하게 됩니다. 범행 당일 오전에 안은일이 윤복희를 납치한 후 그의 집에서 114에 전화를 걸어서 윤복희시의 딸의 학교 전화번호를 문의한 목소리가 녹음된 파일을 확보합니다.

그것을 토대로 윤복희씨의 동선을 추적하던 경찰은 안운일과 공범인 하영미,이민영,Y를 검거하는데 성공합니다.

사건 발생 24일만에 범인을 모두 검거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받게 됩니다. 주범과 공범들은 중학교 선후배 사이로 안운일의 경우 모녀의 집에서 오백이터 떨어진 곳에서 어릴때부터 부모와 함께 살았으며 윤복희씨의 가족과는 허물없이 지낸사이라고 합니다.

안씨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윤복희의 남편 보험금이 2억이 넘는다는 소문을 접하자 공범들에게 범행을 제의하게 된 것이죠. 범행에 사용하게될 중고 쏘나타를 먼저 구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범행전에도 윤씨의 집을 3차례나 방문했고, 윤복희씨의 하루 패턴을 체크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납치 당일 오전 9시경 안씨 일당은 윤씨 집 인근 야산에 숨어서 기다리다가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귀가하는 복희씨를 납치한 것입니다. 일당중 한명은 복희씨가 말을 잘 듣게하기 위해서 이동중이던 차량안에서 복희씨를 성폭행합니다.

그리고 인근 농수로로 데려가 현금 1억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복희씨의 딸을 불러내어서 인질로 잡고 있다가 돈을 넘겨받게되면 딸과 함께 살려주겠다고 속여서 윤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딸 선영양을 조퇴시키도록 종용합니다.

이들은 2개조로 나누어서 한개조는 복희씨 명의의 무쏘 차량으로 강화읍 국민은행에 도착, 1억원을 인출한 윤씨를 복졸라서 차안에서 살해합니다.

또다른 한개조는 쏘나타에 조퇴한 선영양을 태워서 합류지점인 창후리 제방도로에 도착해서, 저녁 7시가 넘은 시각 딸을 목졸라 살해합니다.

이후에 모녀의 시신을 제방 아래 갈대밭에 버리고, 돈을 나눠가진후 강화도,안산 일대에서 은신해 있었던 것입니다. 경찰의 수사과정중에 밝혀진 것은 공범인 Y씨와 하씨는 2년전에 경기도 시흥에서 실종된 다방 여종업원인 19세 한영민의 이복 여동생을 살해한후 암매장한 사실도 드러나게 됩니다.

범행동기는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진술을 했고, 또 다른 차량을 구입해서 새로운 범행을 준비중에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읍니다.

재판부는 2009년 1월에 주범과 영민에게는 사형을, 공범인 안운일과 이민영은 무기징역,범행에 가담하지 않고 모의많나 한연씨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합니다. 하씨는 과한 형량이라고 항소했고, 1심의 판결을 뒤엎고 4월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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