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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의 모든것

두산그룹 가계도,계열사,사건 정리

두산그룹 가계도,두산그룹 계열사,3세대 형제들끼리의 경영과정에서 불어닥친"형제의 난",19991년에 있었던 낙동강페놀 오염 사건의 1차 유출,2차 유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두산그룹 가계도

박승직 두산창업주와 아내 정정숙 사이에서 박두병(두산 초대회장)과 아네 명계춘, 박무병(전 두산산업사장)과 아내 주순희 그리고 박두병의 자녀 첫째 박용곤(두산 명예회장)과 아내 이응숙 사이에서 박정원(주)두산 자주부문 회장 겸 두산건설 회장 그의 아내 김소영(김연기 전 민정당 국회의원 딸)에게서 박상민 박상수가 태어닙니다.

 

둘째인 박혜원(두산 매거진 부사장)과 남편 서경석(서울대병원 교수)에게서 서주원,서장원이 태어납니다. 박지원(두산중공업 부회장)과 아내 서지원에게서 박상우 박상진이 태어납니다.

셋째인 박용언과 남편 김세연(변호사)의 밑에서 김형일(일경산업개발 대표) 그의 아내 권혜경에게서 김준규,김연규,김정규가 태어나고, 김희정과 남편 최원헌(변호사)에게서 최민경과 최형승이 태어나고, 김형님과 백애영 사이에 김헌규과 김지언이 태어납니다.

넷째인 박용오(전 두산그룹 회장)과 아내 최금숙 사이에 박경현 박중원이 있습니다.

다섯째인 박용성(중앙대 이사장)과 아내 김영희(김선월 전 삼실물산 사장 달)에게서 박진원(주)두산 산업차량 모드롤 부문 사장과 아내 김선영 밑에 박상효와 박상연이 태어나고, 박석원(두산엔진 부사장)과 아내 정현주 사이에 박상현과 박상은이 태어납니다.

여섯째 박용현(두산연강재단 이사)과 아내 임명자,윤보영(의사)사이에 박태원(두산건설 사장)과 아내 권보연 자녀 박윤서, 박형원(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과 아내 최윤히 자녀 박상아, 박인권(두산중공업 전무)와 아내 박성인의 자녀 박상정이 있습니다

일곱째 박용만(두산그룹 회장)과 아내 강신애(모 회장 장녀)사이에 박서원(오리콤 부사장)과 자녀 박상후, 박재원(두산인프라코어 부장)과 아내 이현주(전 코오롱상사 사장 외손녀)가 있습니다. 

여덜째 박용욱(이생 회장)과 아내 이상의의 자녀 박효원과 남편 허진수(파리크라상 전무, SPC 회장 장남)과 박예원과 남편 최영환(귀뚜라미 그룹 명예회장 차남)과 박승원이 잇습니다.

두산그룹의 계열사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인프라코아 밥캣홀딩스, 두산건설, 두산엔진, 두산에이엠씨, 큐벡스, 네오트랜스가 잇습니다. 두산그룹은 2016년 재계서열에서 12위로 공정자산은 31조250억으로 추정됩니다.

 

두산그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서 한국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는 그룹입니다. 1896년에 두산 창업주의 이름을 딴 "박승직 상점"으로 시작을하여 122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그룹입니다.

원래는 장남인 박용곤 회장이 두산그룹을 이끌다가 초대회장인 박두병 명예회장의 공동소유로 전환, 공동경영 원칙에 따라서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경영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5남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 있습니다.

3세대 형제들끼리의 경영과정에서 불어닥친 "형제의 난"

두산 형제의 난은 2005년 두산그룹의 박용오 전 회장이 물어나면서 박용성 회장이 취임을하게 되면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두산그룹은 형제가 공동경영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에서 차남인 박용오 회장에게로 그룹 회장직을 셋째 박용성으로 넘길것을 요구하자, 박용오 회장이 이사회 하루전에 '두산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이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함으로 이 사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검찰은 두산그룹이 지난 10여년간 326억원의 비자금을 횡령, 총수일가의 세금 등 가족공동경비 및 가족 분배 등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을 밝혀내고, 두산 관련자 3명에 대하여 불구속으로 기소하면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경영권 다툼으로 형제들을 고발한 이 사건으로 박용오는 가문에서 제명되었습니다.

박용오 전 회장은 형제의 난 이후에 극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외로움을 겪다가 2009년 11월 4일 자택에서 자살하였습니다.

 

1991년에 있엇던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구미 공업단지 안의 두산전자에서 1991년 3월 16일과 4월 22일 두차례에 걸쳐서 각각 페놀 30여톤과 1.3톤을 두번에 걸쳐서 낙동강으로 유출한 사건입니다.

이 당시 페놀은 대구지역의 상수원으로 사용이 되는 다사취수장으로 유입이 되었으며, 염소를 이용한 정수처리과정에서 클로로페놀로 변하면서 악취를 유발시킨 사건입니다.

1차 유출

3월 14일 밤 10시에서 다음날 새벽 6시까지로, 30톤의 누출로 수돗물의 페놀 수치가 0.11ppm까지 올라간 지역도 있었습니다. 이 당시의 대한민국의 허용치인 0.05ppm의 22배, 세계보건기구의 허용치인 0.001 ppm의 110배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이 당시 정수장에서는 염소 소독을 중단, 활성탄과 오존,이산화염소로 물을 처리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대구 환경처 직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을 포함 13명이 구속되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처리 된 사건입니다.

2차 유출

4월 22일 오후 12시 5분에 발생, 이사건으로 인해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당시 64일의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젔습니다. 그러나 임신한 여성이 유산을하고 대구지역 주민들은 엄청난 악취와 환경오염 공포에 시달리는 피해를 입은 후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두산전자 회장이 사퇴했습니다.

녹색연합에서는 1999년 50년이후 발생한 대한민국 환경 10대 사건 중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1위로 선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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