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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부산 6개월 영아 살인사건(2010년)

안녕하세요:) 뚱이 블로그입니다. 오늘 포스팅의 내용은 2010년 발생한 부산6개월 영아 살인사건에 관한 포스팅입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심신미약,미성년자,임산부는 읽지마시고 나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마도 아이를 가진 엄마라고하면 모성본능이라는 것은 아이가 생기게 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성본능을 저버리고 자신의 아이를 살인한 여자 O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2003년 O씨는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친언니를 통해서 사이비 무녀인 P씨를 소개받으면서 부터 사건의 서막이 시작되게 됩니다.

2003년 당시 38살이엇던 O씨는 가장이 낸 교통사고의 합의문제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져 있었읍니다. 그들 가족은 똘똘 뭉쳐서 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무속신앙의 힘을 빌리기로 했읍니다. 

그리고 O씨는 친언니의 중학교 스승이었던 2011년 사망당시에 57세엿던 P씨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P씨는 1993년경 신병을 앓게 되고,그로 인해서 교사직을 그만두고는 남편과 함께 광고사를 운영중이었지만, 신내림을 받았다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찾아온 사람들의 점을 쳐준다거나,기도를 해주는 등의 무당일도 함께 병행하고 있었던것 같읍니다.

O씨의 가족들은 영적인 도움을 받은 후로는 점점 더 P씨를 의지하게 되었읍니다. 

P씨는 보통 무속인들이 하는 멘트를 O씨 가족들에게 했읍니다.

전생으로 인해 단명한다,기도를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더 큰 액운으로 고통받게 된다,나는 달이나 태양과도 교신을 한다,악업을 처리하려면 기도비가 필요하다는 등의 말을 하면서 돈을 요구했고, P씨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보였던 O씨의 가족들은 어떻게해서든 돈을 마련해서 P씨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O시는 P씨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수많은 빚을 지게 되었읍니다. 그로 인해서 O씨의 가족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읍니다.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조건에서 요구를한것이 아닌 P시는 O씨의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O씨 가족들은 각자 빚을 내가면서 P씨의 방생기도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게 되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O씨는 P씨를 따라서 전국의 사찰을 함께 돌면서 기도를하게 됩니다. 

이제는 불어날대로 불어난 빚독촉으로 인해서 힘들어하던 O씨를 P씨는 자신의 동생이 있는 사찰로 O씨를 보내어 거기서 생활하게 합니다. 여기서 O씨는 P씨의 사촌동생과 지내게되면서 그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불과 사찰에 머문지 두달 상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에 P시의 사촌동생은 대고종 승려였다고합니다.

2010년 2월에 O씨는 임신 34주만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인공호흡기를 단채로 치료를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다시 P씨가 개입을하게 되는데,아이가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것을 알고 잇음에도 O씨에게 퇴원을 종용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생명은 위험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아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아이가 퇴원후에도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야함에도 O씨는 그렇게하지 않았읍니다. 

2010년 2월 26일에 O씨는 아기를 퇴원시킨 뒤에 P씨의 지시에 따라서 마트의 내부에 있는 세탁소 일을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2개월에서 3개월 가량을 일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O씨는 다시 5월부터는 아기와 함께 상주에 있는 암자로 가서 공양주로 일하게 됩니다. 때마침 방생기도를하기 위해서 자금이 부족했던 P씨는 O씨가 공양주로 있는 암자로 찾아가게 됩니다. 

그 후,P씨는 향에 불을 붙여서 O씨의 등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댓다가 땟다를 반복하면서 연비의식을 거행합니다. 

이 연비의식을 두달 가량을 향의 갯수를 늘려가면서 O씨의 허벅지와 양쪽 어깨,머리까지 몸 전체에 연비를 실시하게 되고, 얼마나 심하게 지져대었으면 O씨는 어깨에 심한 화상을 입어서 더 이상 공양주로도 지낼수 없게 되었읍니다.

2010년 7월 O씨는 아기와 함께 P씨가 자신의 딸과 함께 거주하는 부산 금정구 오피스텔로 들어가서 함께 살게 됩니다. 여기서도 P씨는 계속해서 O씨를 괴롭히게 되는데 암자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연비의식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고문에 불과한 것이었읍니다.

2010년 8월 P씨는 O씨에게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부족했는지 이번에는 태어나지 말앗어야 할 아기가 태어났다면서 아기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O씨가 아기를 보지 못하도록 벽을 보게 한후에 향불을 이용해서 20분동안이나 아기를 괴롭혓고 그로인해서 아기는 숨지게 되었읍니다. 이로 인해서 생후 6개월에 불과한 아기가 죽게된 것입니다.

 

2010년 8월 3일 P씨는 아기가 사망한 것을 발견하고는, 아기의 죽음을 은폐하자고 O씨를 종용합니다. 그리고는 시신을 유기하기로 하고 O씨의 제부와 P씨의 딸을 함께 불러서 일을 도모하게 됩니다. 

아기의 시체를 담은 쇼핑백을 들고는 견산시의 한 사찰 진입로까지 가게됩니다. 차를 세우고 내린 세 사람은 고곳에서 30미터 가량 떨어진 야산에서 아기를 높고는 신나를 뿌려서 아이를 태우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범행사실은 7년간 어둠속에서 묻혀있다가 2017년 1월에 사망한 아기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나이가 되어서야 들통나게 됩니다. 학교 예비소집일에 O씨의 아들이 불참한 것을 수상하게 여긴 초등학교측에서 경찰에 아이의 소재 파악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O씨는 아들의 소재를 묻는 경찰에게 2010년 8월경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 부산에 사는 P씨에게 아기를 맡겼는데 P씨가 사망하게 되면서 연락이 끊겨서 아기의 소재를 알수없다고 거짓 진술을하게 됩니다. O씨가 아기를 찾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점을 수상히 여겨서 수사끝에 사건의 진위를 밝히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O씨는 반성하고 있다는 점과 초점인 점,P씨에게 지배당한 상태가 참작이 되면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읍니다. O씨의 제부와 P씨의 딸은 불구속 입건이 됩니다. 법에 명시되어있는 형량에 비해서 너무나 적은 형량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살인의 죄

제250조 살인,존속살해를 살펴보게 되면,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읍니다.

제251조 영아살해에 대해서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중 또는 분만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위에서와 같이 초범인점,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서 O씨는 2년의 징역을 선고받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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