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인마

유영철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총정리

안녕하세요:) 뚱이 블로그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된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에 대해서 정리를 해볼까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법한 그 이름 유영철입니다.혹시 이글을 미성년자나 임산부와 심신미약자가 클릭을 하셨다면 보지 말고 바로 창을 닫아주세요!

유영철 어린시절

그는 1970년 4월 18일 생으로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의 형제로는 형 2명과 여동생이 있는데 여동생과 유영철은 2란썽 쌍둥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영철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본부인인 자신을 버리고 첩을 둔 상태에서 생활을 한 상태로 생활고로 인해 그때 태어난 유영철을 죽일까 생각을했다고 합니다.

유영철의 유년시절은 가정이 찢어지게 가난했고, 알콜 중독이던 아버지는 폭력과 함께 외도도 심심찮게 했다고 합니다.

유영철은 6살때부터 국민학교 1학년까지 계모와 계모가 나은 형제들 사이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유영철의 아버지와 새엄마는 밤만 되면 유영철에게 폭력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퍽! 퍽! (윽~ 윽~)

견디다 못한 유영철은 다시 어머니에게로 가서 같이 살게 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시절은 서울 공덕동 일대에서 보내게 됩니다. 유영철이 중학교 1학년이던 시절 유영철 친부가 사망을하게 되면서, 유영철을 비롯한 형제들은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평소 미술실력이 뛰어난 편이었던 유영철은 예고에 지원하게되지만 낙방하고, 그 후 국제공고에 입학하나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서 쌍둥이 여동생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전교 10위권안에 드는 모범생이었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연쇄살인범이 되기 전

유영철은 연쇄살인을 하기 전에는 각종 절도와 금품 갈취를해서 절도 전과로 구속이 된 적이 있고, 거기서 어떤 목사님과의 인연으로 종교에 귀의하려고 했지만,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는 선처를 호소하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것에 분개해서 반종교적 인물로 돌변합니다.

이 후 출소후 연쇄살인의 처음부터가 종교와 관련된 부유층을 살해한 것, 상당수의 피해자 거주지가 교회 인근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유영철 범행 일지

2003년 9월 24일 그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S여대 명예교수이던 72세 A씨와 부인 67세 B씨를 둔기로 살해합니다.

2003년 10월 9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2번째 살인을하게 되는데 불과 첫번째 살인을 저지른지 10여일이 지났을 무렵이었읍니다. 주차관리원이던 60세 K씨의 집에 침입을 해서 58세이던 K씨의 아내와 아내의 어머니인 82세 C씨,그리고 K씨의 아들인 35세 지체장애를 앓던 이들을 둔기로 34회가량 강타해서 살해합니다.

2003년 10월 16일 두번째 범행으로부터 7일후,그는 강남구 삼성동 2층 주택에 침입을 해서 20세의 C씨와 부인인 69세 U씨를 둔기로 살해합니다.

2003년 11월 18일 네번째 살인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2층 주택에 침입을 해서 당시 87세이던 집주인 K시와 53세이던 파출부 D씨를 둔기로 살해합니다. 그리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 금고에 불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당시에 현장에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던 K씨의 증손자가 이불에 둘러 쌓여서 질식이전까지 갔지만, 다행히도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2004년 3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오피스텔 자신의 집에서 마사지를 핑계로 불러들인 25세 K양을 살해합니다.

2004년 4월 14일 서울 중구 황학동에 위치한 도깨비 시장에서 당시 노점상을 하던 44살의 E씨를 자신의 베스타 승합차로 유인해서 살해합니다.

그리고는 월미도에 가서 시신을 유기한후, 범행에 사용된 승합차는 소각하여서 증거를 인멸합니다. 피해자이던 E씨는 칼에 20번이나 찔려서 살해 당했다고 합니다.

시신은 월미도에서 기름 탱그에 담겨져 불태워지게 되고,뒤늦게나마 유가족들이 몇 점을 수거하여서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E씨는 평소 경찰이 자주 단속을하였던 터라,유영철이 내민 가짜 경찰 신분증을 알아보는 바람에 유영철에 의해서 살해가 된 것입니다.

E씨는 4형제중 장남으로, E씨가 살해된 이후에는 둘째 남동생이 자살을하고, 8개월 후 막내 남동생도 자살을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생존자이던 셋째 남동생도 자살을 시도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E씨의 부인 또한 현장검증에서 너무나 태연한 유영철의 모습을 보다가 실신하게 됩니다. 지금은 자식들과 함께 잠적해 버리고,E씨의 남동생들과도 연락이 끊어진 상태라고합니다.

2004년 4월에서 7월 상간에 마포구 노고산동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전화방 도우미를 비롯한 마사지 도우미를 하는 여성들 11명을 살해하게 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유영철 편에서 유영철이 한 유명한 말이 있죠?

"이번 일로 인해서 부유층들이 각성햇으면 좋겠고, 여자들이 함부로 몸을 놀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라는 말을 남겻죠.

유영철이 살해한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돈과는 관련없이 힘없고 저항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엇읍니다. 그리고 경찰 조사중에 유영철은 윤락녀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여성들을 주로 노렸다고합니다. 유영철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였고, 자신이 살해하기가 쉬운 사람들만을 골라서 죽였읍니다. 유영철이 살해한 젊은 남성은 의도하지 않는 살인을 했었던 K씨의 아들과 노점상을 하던 E씨가 전부인것을 보면 아실것입니다.

유영철은 170cm의 키에 크지 않은 체격이어서 젊은 성인 남성은 건드리지도 못햇다고 합니다.

진화하는 그의 패턴

처음 초기에는 다른 사람의 주택에 불법적으로 침입하여서 둔기를 휘둘러서 살해하는 방식을 사용햇으나, 횟수가 거듭되면 될수록 그는 주로 출장 마사지 여성들을 자신의 거주지로 불러들여서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실수로 CCTV에 자신의 뒷모습이 제대로 찍힌 후로 신고 있던 신발과, 머리에 쓴 모자까지 완벽하게 나오면서 수배가 떨어지게 되자 그의 범행은 소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은둔생활을 하면서 이혼 통보를하게 된 아내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해서 직업여성들을 불러들인 후 돈을 빼앗고, 직업여성의 업주에게는 늦게나마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만두게 되엇다고하면서 거짓 전화를 강요하고,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놓은 후에 손망치로 직업여성들을 살해한 방식을 쓰게 됩니다.

유영철의 검거는 경찰이 잡앗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유영철을 붙잡은것은 보도방의 업주들이었다고 합니다. 계속 같은 번화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나간 여성들이 계속에서 돌아오지 않게 되자, 보도방 업주들이 힘을 뭉쳐서 전화번호를 요주인물로 분류하고 유영철을 유인해서 붙잡았다고 합니다. 유영철은 한번 이용한 업소는 두번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앗지만, 업주들 사이에서는 그 번호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검거 후

경찰들은 2004년 7월 15일 체포된 유영철을 잡범정도로 생각하고 조사를 진행햇고, 전화로 불러낸 마사지사들을 어떻게 했다는 질문을하게 된느데, 이 때 유영철은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주범이 나라고 진술햇지만, 이미 감옥을 들락날락 거리던 경험이 있던 유영철은 진술에서 정황을 모르는척 연기하고, 경찰을 혼란으로 빠트린후 도망쳤지만 11시간만에 다시 역등포역에서 붙잡히게 됩니다. 경찰 조사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이내 시간이 얼마 지나지않아서 살인을 자백하게 됩니다. 현장 검증에서는 26명을 살해했다고 주장을 했지만, 정황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본 수사 담당관은 20명을 살해했다고 밝혔읍니다.

유영철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사이코패스적인 성향과는 다르게 가족에게도 아들에게도 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투옥 당시 경찰관이 아들의 대학교 진학까지도 뒷바라지 해주겠다고 회유를 하자 거짓 진술을하게 되었고, 감옥에서도 기자와 나눈 편지에서도 아들 자랑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이유 때문인지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연령대인 10대에서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앗읍니다


Please Enable JavaScript!
Mohon Aktifkan Javascript![ Enable JavaScrip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