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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미제사건

안산 리어카 토막 살인사건

안녕하세요:) 2011년 7월 6일 오후 3시 10분경에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경비실로 전화가 걸려오게 되면서 사건의 내막은 드러나게 됩니다.

전화내용은 "우리 아이가 놀이터에 방치되어 잇는 손수레(리어카) 때문에 다쳤으니 빨리 치워주세요"라는 것이었읍니다. 전화를 받은 경비원인 K씨는 아프트단지 한 가운데에 있는 놀이터로 향하게 됩니다.

이 리어카는 수년전부터 그 자리에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굉징히 낯익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K씨는 리어카의 주인이 확인되지를 않아서 직접 치우려고 합니다. 리어카 짐받이에는 짐이 실려져 있었으며 줄로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고 합니다. K씨가 묶인 줄을 풀고는 천막을 들춰보니 아이스박스가 나오게 됩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비닐로 겹겹이 쌓인 직사각형의 물체가 있었으며, 검은색 물이 꽉 들어찬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경비원 K씨가 비닐을 벗겨내가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비닐로 겹겹하게 쌓여있는 것은 여행용 가방이었읍니다. 경비원 K씨는 가방을 바닥에 눕혀놓게 됩니다. 그리고 "물을 빼려고 칼로 찢으니 물이 콸콸 쏟아지면서 시뻘건 핏물도 함께 나왔다"고 말합니다.

물이 빠지고 나니 그 안에 다른 물체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바로 사람의 발이었다고 합니다. 경비원 K씨는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경찰이 출동을 해서 가방을 열어보니 토막 난 알몸 여성의 시체가 나오게 됩니다.

시신은 목과 몸통이 분기가 된 상태엿으며, 엄지손가락 두개도 절단이 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범인이 의도적으로 시신을 훼손한 것입니다. 시신은 오랜시간 방치가 되어 있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에 경찰은 시신의 신원과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합니다. 국과수에서는 사체의 부패가 워낙 심해서 사망원인을 밝힐 수는 없었으나, 사망시점은 최소 6개월 정도로 추정했읍니다.

그리고 시신에 남아 잇느 8개의 손가락에서 3개의 지문을 확보 신원을 확인합니다. 시신의 주인은 아파트 주민인 44세의 여성 박남희씨였읍니다.

박남희씨는 왼쪽 팔에 장애가 있었고, 뇌성마비 4급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입이 약간 삐뚤어져 안면 근육 장애도 있었다고 합니다.

박남희씨는 2003년 6월부터 2005년 1월 13일까지 노인이나 장애인의 가정을 방문하여 가사와 개인활동을 돕는 사람인 홈헬퍼로 일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 의하면 박남희씨는 사정상 갑자기 홈헬퍼 활동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박남희씨는 평상시에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해서 정말 열시미 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했읍니다. 박남희씨에게 간병을 받았던 사람들도 성격은 쾌활하고 장애인들과도 잘 지냈으며, 특별히 원한을 산다거나 금전관계는 못들었다고 말했읍니다.

박남희씨가 홈헬퍼를 그만둬야 했던 사정은 남편과의 이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박남희씨 남편은 강원도의 한 복지재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남편과의 사이에 17살 외아들이 있었으나, 자폐증으로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한 요양시설에 수용되어 있었읍니다. 박남희씨는 남편을 폭력혐의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위자료를 청부했다고 합니다.

박남희씨는 이혼소송을 장애인 봉사를 함께하던 66세의 J시가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박남희씨는 이혼 전 후 한동안을 J시의 집에서 함께 거주했다고 합니다.

 

J씨의 아내인 60대 지체장애 1급인 O씨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박남희씨를 본적도 알지도 못한다고"했다가 박남희씨가 J씨 집에 있던 것을 목격한 사람이 등장하자 "우리 집에서 45일 정도 살았어요.

이혼하고 갈데가 없어서 우리 집에 있었어요"라고 말을 바꾸게 됩니다. O시는 또한 이 여자가 남편한데 두들겨 맞았다고 덧붙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폭력으로 이혼을해서 위자료 청구를 받앗으나, 폭력적이지는 않았다고 전했읍니다.

경찰은 박남희씨의 행적을 알아보기 위해서 통신내역이나 금융거래내역과 건강보험 진료기록을 샅샅이 훑어봅니다. 여기서 박남희씨에 관한 증언,기록의 흔적이 2006년 3월 말을 기점으로 멈춰있었읍니다.

최소한 박남희씨는 이때까지는 확실하게 살아있었다는 것입니다. 박남희씨의 주민등록증은 시신이 발견되기 3개월전인 2011년 4월에 말소가 된 상태였읍니다. 박남희씨의 행적이 멈춘 2006년 4월부터 2008년 4월까지 2년간을 누군가 박남희씨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 수당 40만원을 인출해 간 것입니다.

매달 말이죠! 경찰은 인출자가 누구인가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인출된 2곳은 박남희씨가 살던 아파트와 가까운 곳이었읍니다. 하지만 카드로 현금인출기에서 인출을 햇기에 누구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읍니다. 몇년이 지난 상태라서 CCTV에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읍니다.

하지만 경찰의 끈질긴 추적으로 돈을 인출해간 사람이 밝혀지는데, 바로 박남희씨의 보호자 역할을 하던 J씨입니다.

그리고 박남희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리어카의 주인이 바로 J씨였던 것이죠! 경찰은 J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용의선상에 올렸으나, J씨는 2009년 11월 27일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읍니다.

박남희의 보호자 역할을 하던 J씨는 원래 치과의사이며, 1남 2녀의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1985년 4월, 다른 남자와 여관에 투숙한 아내를 보게되자, 홧김에 여관방에 있던 난로를 아내에서 던져 숨지게했고, 1심에서 사형, 2심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게 됩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기독교에 귀의를 하고, 그러던 중에 교통사고로 하반신 이 마비된 여성이 쓴 시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해 2000여통이 오고 갑니다. 2008년 8월 15일 이둘은 옥중 결혼을 했고, J씨가 다음해 광복절 특사로 출소하면서 18년만에 사회로 나옵니다.

당시에 옥중 결혼을 햇던 여성이 지금의 아내인 O씨라고 합니다. 그녀는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타고 생활했다고 합니다. J씨는 출소후 장애인들을 위한 선교회를 꾸렸으며 도움을 청하는 장애인들의 손발이 되어 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장애를 가지고 있던 박남희씨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파트 주민들이 기억하는 J씨는 평이 좋으며, 워낙 열심히 사시고 헌신적으로 장애인 봉사를 많이 해와삳고 기억합니다. 그렇게 이 사건의 실마리를 쥔 J씨가 사망을 하면서 사건은 더이상 진전이 없었으며, 이 사건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나오지 않아서 미제사건으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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