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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 이춘재 그는 누구인가?

안녕하세요:) 1986년 9월 15일 오전 6시 20분경에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의 풀밭에서 당시 71세이던 여성 L씨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조용하고 평화롭던 지역이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 일명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내막에 관한 내용입니다.

L씨는 밭에서 재배를한 채소를 팔기위해서 수원의 시내로 갔다가 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됩니다.

그리고는 딸의 집에서 10분거리인 곳,자신의 집에서는 30분 거리인 안녕리 길옆 풀밭에서 하의가 벗겨진 상태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35일 후, 10월 20일 오후 2시경에 결혼 상담차 인근 마을에 다녀오던 25세의 여성 P씨가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에서 발견됩니다.

불과 이 두 사건의 거리는 4k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증거.유류물로 위 내용물과 보자기,베지밀 병이 발견됩니다.

P씨도 모우 옷이 벗겨진채로 목이 졸려,흉기에 4곳이나 찔린 상태였습니다.

당시 범인은 P시를 살해한 후 그곳안에다가 복숭아 조각을 넣는 엽기행각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증거.유류물로는 우유갑.담배꽁초(B형),머리카락 6개(O형,B형)이 발견됩니다.

당시 경찰은 첫번째 희생자가 발생할 당시만 해도 단순 살해사건으로 보앗습니다. 그러나 수법이 같은 두번째 희생자가 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됩니다.

그리고 계속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을 못했습니다.

범인은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58일만에 세번째 여성을 살해합니다. 주부인 24세 여성인 K씨입니다. K씨는 12월 12일 밤 11시경에 집에 귀가하다가 피살,역시 하의가 벗겨지고 양손이 묶인채였습니다.하지만 화성지역 여성의 살해와 실종에도 경찰 수사에는 진전이 없었다고 합니다.증거.유류물로는 팬티(A형),거들,면장갑,핸드백이 발견됩니다.

범인은 살인에 박차를 가하듯,폭주한 기관차가 멈추어지지 않듯이 네번째 살인을 이어가게 됩니다.

23세의 여성인 L씨는 맞선을 본 후에 버스르 타고서 집으로 향하다가 살해된 것입니다.

12월 14일 오후 11시경 화성시 정남면 관향리 논두렁에서 스타킹에 의해 목이 졸린채 발견된 것입니다.

증거.유류물로는 체모(b형),손수건,팬티,혈흔이 발견됩니다.

다섯번째는 1987년 1월 10일 오후 8시 50분경에 화성시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한 여고생이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친구를 만나고서 귀가를 하던 18살의 H양입니다.

당시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으며 양손은 뒤로 묶인채였습니다.

 

다섯번째 희생자인 H양은 성폭행을 당한 후에 살해가 된 것입니다.증거.유류물로는 B형의 정액과 천조각이 발견됩니다.

여섯번재 희생자느 1987년 5월2일 밤11시경 남편을 마중 나갔었던 30살의 주부인 또 다른 P씨가 2차 범행장소 인근 태안읍 진안리 야산에서 발견됩니다.

당시 착용했던 브래지어 근과 블라우스에 목이 졸려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피해자는 모두 여성으로, 성폭행을 당한 후였습니다.증거.유류물로는 남편의 혈액형과 동일한 A형의 정액과 패하자 AB형의 체모가 발견됩니다.

잠시 듬하더니, 4개월 후인 1987년 9월 7일 밤 9시 30분경에 일곱번째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54세의 여성인 A씨가 화성시 팔달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상의가 벗겨지고 양말과 손수건을 입에 물린채로 발견되엇습니다.

A씨는 퇴근후에 버스에서 내려서 귀가하다가 변을 당하게 됩니다.증거.유류물로는 양말이 발견됩니다.

그로부터 11일 후인 1988년 9월 16일 화성 인근에서 또 다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날 새벽 2시경 태안읍 진안리 자신의 집 안방에서 자던 여중생인 13살인 P양을 성폭행한후 피살한것입니다.

당시 경찰의 현장 감식결과 남성의 음모가 남아 있었습니다.

경찰은 인근에 경운기수리텐터의 종업원이던 22살의 Y시를 범인으로 체포합니다.

현장에 남아 있던 음모와 Y씨의 음모를 비교분석한 결과 일치한 것입니다.

하지만 앞전 사건들과는 수법이 완전히 달라서 동일범의 연쇄사건 선상에서 제외됩니다.

이듬해 7월에 범인인 22세 Y씨는 검거가 됩니다.

그리고 화성연쇄살인범인 이춘재의 살인행각은 멈추다가 다시 1990년 11월 14일에 여덟번째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오후 6시 30분경 태안읍 병점5리 야산 소나무 밑에서 중학교 1학년인 13살의 K양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K양은 학교 수업이 파한후에 귀가하다가 성폭행을 당하고 목졸려서 살해됩니다.

범인은 K양의 필통에서 면도칼을 꺼내어서 가슴부위를 격자부위로 38번이나 그었습니다.

 

증거.유류물로는 B형의 정액,도시락,면도칼,팬티,거들이 발견됩니다.

마지막인 아홉번재 희생자는 1991년 4월3일 밤 9시경 동탄면 반송리의 야산에서 발견됩니다.

딸의 집을 다녀오던 마을 주인인 60세 여성인 K씨가 성폭행후 살해된 것입니다.

당시 목에는 신고 있던 스타킹으로 감겨져 있었으며 음부가 크게 훼손된채였습니다.

이를 끝으로 4년 7개월간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극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증거.유류물로는 천조각과 양말이 발견됩니다.

당시 이 사건에 동원되었던 경찰인력은 205만여명으로 단일 사건으로서는 최대라고합니다.

수사 대상자는 동일 전과의 2만1280명,지문 대조 4만 116명,모발 감정 180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수사가 과학적이지 못해서 탐문수사에만 그쳤습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특징

피해자 모두가 여성이었다는 점과,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양손을 뒤로 묶은 뒤에 성폭행하거나 그곳을 훼손하고 목졸라서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범인은 흉기 대신에 피해자의 옷이나 스타킹,브레지어를 범행도구로 사용합니다.

피해자들의 나이는 10대에서 70대로 가리지 않고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또한 범행지역은 화성군 태안읍을 중심으로해서 반지름 3km안에 4개 읍과 면에서 발생했습니다.

첫번째를 제외하고는 두번째에서 아홉번째 사건 모두가 밤 7시에서 11시 사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범인은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숨기지는 못햇습니다. 긴 범행기간과 범행횟수가 늘어나면서 예상치 않은 곳에서 흔적을 남기는가 하면 목격자들도 있었습니다.

 

목숨을 건진 사람들

네번째 사건이 있기 보름전인 1986년 11월 30일 밤9시경 교회에 가려던 45세 여성인 K씨는 태안읍 정남리의 논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흉기를 든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K씨는 범인이 자신의 가방을 뒤지는 사이에 달아나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당시 범인인 이충재는 K씨 양손을 양말로 결박,속옷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서 얼굴을 덮었다 합니다.

이는 이전의 수법들과 똑같았습니다.

당시 경찰은 K씨를 성폭행한 범인이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동일범으로 판단,K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범인의 나이가 20대 중반이며, 키가 165에서 170 사이에 호리한 몸매,오똑한 코에 쌍커풀이 없는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라고 몽타주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하지만,공소시효가 2006년 4월에 끝나게 되면서 미재사건으로 남아있던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게 됩니다.

이춘재는 누구인가?

1963년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2형제중 장남으로 태어납니다.

고향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인근의 안녕리에 한 전기부품 공장을 다녔습니다.

아홉번째 희생자가 1991년 4월에 발생하게 되는데, 이춘재는 3개월 후인 1991년 7월에 24세의 여성인 L씨와 결혼합니다.

그제서야 연쇄살인도 멈추게 됩니다. 이후에 아들을 낳고는 1993년 4월 새로운 직장을 얻기위해서 아내의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로 이사합니다.

그리고 한 건설업체에 취직해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합니다. 흥ㄷ거구 복대동에 잇는 방 2칸의 18평 빌라를 구해서 가족이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나 다니던 회사가 부도,아내의 벌이에 의지하는 상황이 되게 됩니다. 아내는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이춘재는 성격이 포악했으며,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이춘재는 한번 화가 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동서가 잇는 자리에서도 아내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지는가하면 손과 발로 피가 날대가지 때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아들을 방에 가두고 폭행도 했다고 합니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12월 18일 두살배기 아들을 두고 가출합니다. 아내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던 그는 대학교에서 교직원으로 일하던 20세의 처제를 성폭행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1994년 1월13일 오후에 처제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서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먹인후에 성폭행합니다.

그리고 범행이 발각될 것이 두려워 처제의 머리를 망치로 수차례 가격하고, 목졸라서 살해합니다.이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마지막 희생자가 나온지 2년9개월 만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이춘재는 성폭행과 살인,사체유기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춘재는 대전교도소에서 이감되어서 1995년부터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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