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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사건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재조명

때는 바야흐로 1981년 당시 33살이던 전라남도 신안 출신의 오재홍은 자신의 별명을 딴 맘보파를 결성하고서 세력을 확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흔히들 말하는 호남파로 전라도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한 이들은 서울 유흥업계의 노른자로 불리는 강남구 역삼동 일대 호텔,나이트 클럽,룸살롱에 폭력을 행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1982년 10월 20일 두목 오재홍과 부두목인 32살의 조시온이 경찰에 구속이 되면서 맘보파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서울 목포파 결성

그리고 1984년 11월 장진석은 김동술,유원희,박진영과 함께 서울 목포파를 결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업가인 정요섭을 조직의 보스로 추대하고 자금을 맡도록하고 장신석은 두목,김동술은 행동대장,박진영은 총무로 역할을 분담하게 됩니다.

이후에 남서울 일대의 호텔,룸살롱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무서운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게 됩니다.

강남 일대의 유흥업소를 놓고서 맘보파와 신응 서울목포파의 대결구도가 그려졌고 두 조직간의 알력지 시작되었습니다.

1986년 8월의 어느날 맘보파 조직원이던 당시 28살의 고용수가 교통사고를 내고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게 됩니다.

이에 맘보파는 고씨가 풀려나자 축하겸 단합대회를 하게 되는데 자신들이 관리하던 곳이 아닌 서울 목포파가 관리하던 강남구 역삼동 서진회관 지하 룸살롱에서 하게 됩니다.

고용수,24살 조원섭,23살 송재익,24살 장경식,25살 차권,44살 천종갑,29살 이왕규 등은 룸살롱으로 향했고 이들을 종업원은 17호로 안내하게 됩니다.

이때 서울 목포파도 서진룸살롱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합니다.

서진 룸살롱 사건 전말

41세의 정요섭은 목포에서 사업차 상경한 42세 황씨,38살 송씨,36살 이씨와 23살의 내연녀 김미희와 20호실에서,25살 두목 장진석,22살 고금석,23살 김동술,27살 김승길,19살 김경만,24살 유원희,27살 박영진,23살 양해용 등 8명은 맘보파 바로 앞방인 16호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맘보파는 비무장이었던 것에 비해서 이들은 회칼,야구방망이로 완전무장을 한 상태였습니다.

룸에 들어간 맘보파 일행 중에 이왕규가 목포 중학교 선배인 룸살롱 전무인 30살의 박씨를 불러서 4만원을 건네고는 돈이 이것뿌이 없으니 이 돈으로 위스키 2병을 주고 안주는 서비스로 달라고 요구합니다.

대략 10분이 지나도 주문한 술이 나오지를 않자 이왕규가 카운터로 가게 됩니다.

조원섭이 흥분하여 인터폰을 누르고 28살 웨이터 권씨를 불러서 방이 좁으니 다른 방으로 바꿔달라고 햇지만 손님이 많아 넓은 방이 없다고 하자 조원섭이 권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게 됩니다.

코피를 흘린 권씨는 옆방인 16호로 들어가는데 장신석 일행은 피투성이가 된 권씨를 보고서 어느 놈이 그랬냐고 자초지정을 묻게 됩니다.

일행 중 조원섭과 안면이 있던 김승길이 일어나 17호실 문을 두드리고 조원섭을 불러내고 이 둘이 대화중일 때 고금석이 전화하러 나왔다가 두 사라을 쳐다보게 되고 조원섭은 인상 풀라고하며 고금석에게 주먹을 날립니다.

16호실에 있던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이 복도로 나오자 조원섭은 위급함을 느끼고서 큰 소리로 17호실의 동료들을 불러냅니다.

좁은 복도에서 맞닥뜨리게 된 이 때 장진석이 순간 전부, 죽여버려라고 소리쳤고 조직원들이 다리에 차고 있던 회칼을 뽑아 들게 됩니다.

조원섭은 이 모습에 당황하지만 객기로 찔러볼테면 찔러보라고 큰 소리로 치다가 고금석에게 오른팔을 찔립니다.

이후는 불을 보듯 뻔한일...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조원섭,송재익은 화장실로 대피,고용수,장경식은 17호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급니다.

고금석,김동술은 화장실로 따라가서 조원섭,송재익을 칼로 찌르고 방망이로 때려서 살해합니다.

이후 17호로 가 철봉으로 문을 부수고 고용수,장경식의 몸을 난자하고 살해합니다.

이때 대기실로 대피한 천종갑,차권,이왕규는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그리고서 종업원에게 우리가 병원으로 옮겨 수습하겠다면서 경찰에 알리지 말라고하면서 시신을 들쳐업고 룸살롱을 빠져나와 주차장에 있던 승용차 두 대에 싣고 8km가량 떨어진 사당동 정형외과고 갑니다.

이들은 병원에 2층 수술실과 1층 계단 사이에 버려두고서 교통사고 환자라고 말하면서 달아나게 됩니다.

사건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는데 17호실 방문은 가해자들이 부숴가지고 떨어져나가 있었고 가운데 탁자,옷장 등 문짝도 흉기에 긁히고 찍힌 자국이 있었습니다.

바닥은 피에 흠뻑 젖어 있었고 휴지통과 재떨이 간이의자 등의 집기들도 박살 난 채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해당 사건을 접수한 서울시경 3부장을 본부장으로 해서 수사본부를 꾸리고 범인 검거에 나서게 되고 당시 서진룸살롱에 잇던 서울 목포파 조직원 12명에 대해서 공개수배를 내리게 됩니다.

이에 목포파는 대책회의를 가지고 15일 정요섭 등은 과천에 잇는 유원희의 애인 아파트에 모입니다.

사건이 시끄러우니 일부는 자수해서 시간을 벌자는 제안을 정요섭이 하게 되고 두목인 장진석도 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정요섭은 사건 현장에 잇던 조직의 막내인 김경만을 보호하고자 20살 강정휴를 대신 자수시키기로 합니다.

이어서 박영진,고금석,강정휴,정요섭,홍성규,김승길이 각본에 따라 순차적으로 경찰에 자수를하게 됩니다.

유원희는 청량리에서 애인을 만나려다가 애인의 신고를 받고 잠복해잇던 경찰에 검거됩니다.

김경만도 수사선상에 오르게 되자 경찰에 자수,강정휴는 위장자수가 드러나서 그와는 친한 사이로 평소 의리때문에 대신 자수햇다고 자백합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장진석,김동술은 도피 상태로 경찰은 이들의 은신처에 대한 결정적인 제보를 입수하고 무술 경관 5명을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용운리에 급하합니다.

19일 5시경 47세 임씨가 집 헛간에서 낚시꾼으로 위장하고 숨어있다가 검거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수를 권하지만 칼을 휘두르며 대항,공포탄 7발을 쏘아서 제압하고 수갑을 채우게 됩니다.

재판 결과

대법원까지 가게 된 재판에서 김동술,고금석은 사형,사형이 선고되었던 장진석에게 우발적 범행이라는 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됩니다.

나머지는 원심대로 김승길 무기징역,박영진 징역 20년,정요섭 징역 15년,유원히 징역 12년,김경만 징역 3년 6월,양희룡 징역 2년,홍송규,강정휴 각각 징역 1년6월이 확정됩니다.

1989년 8월에 김동술,고금석의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징역 20년을 받았던 박영진은 2006년 출소하고서 2010년 11월 51세에 한살 연상인 장진석의 누나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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