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이슈

대한민국 역대 참사사고

ⓐ대한항공 KAL858기 폭파사건.때는 바야흐로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1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라크의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의 보잉 707 기종의 KE858이 USA의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거쳐서 서울 김포국제공항으로 오기 전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인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도중에 인도양 상송에서 교신이 두절되면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원인은 북한 공작원 2명 김승일과 김현히가 폭파물 라디오와 술로 위장한 폭탄과 함께 탑승한 뒤, 경유지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린후 바레인 공항을 빠져나가다가 위조여권이 발각되자 담배 필터부분에 장치된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삼켜 당시 70세이던 김승일은 자살하고, 당시 26세이던 김현희는 소량밖에 삼키지 못해서 살아남은 사건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북한은 남조선의 자작극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하루전날에 살아남은 폭파범 김현희가 압송되는 일이 발생을 합니다. 이 사건으로 김현희는 사형을 선고받앗으나 1990년 4월에 특사로 풀려나서 안기부 촉탁직원이 됩니다.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이 사건은 1987년 8월 6일 오전 1시 43분경 김포국제공항발 대한항공 801편이, 테일넘버 HL7468이 미국령인 괌의 안토니오 B.원 팻 국제공항에 접근하다가 추락한 사건으로 승객 254명중에 228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휴가철인 8월에 대표 휴양지인 괌으로 가는 항공기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엿기에, 가족 단위로 탑승한 경우가 대다수여서 일가족 전원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고로 비행기를 타지 않았던 사위를 제외한 장인과 그 일가족 및 직계비속까지 전원 사망하여서, 장인의 형제들과 사위가 1천억원대의 유산 상속권을 두고 3심까지 가는 소송을 벌인 끝에 사위가 승소한 재판이 잇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기구한 사연으로는 당시 대한항공 박완순 괌 지점장은 이 사고로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 박수진을 잃고 당시 대치중학교 2학년이던 딸만 살아남았음에도 자신의 슬픔을 뒤로한채 밤새 사고수습에 전념해야 했으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박완순은 자신도 유족이엇음에도 다른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는 인터뷰를 하다가 끝내 울음을 터트려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 일와도 있습니다. 또한 이때의 사상자로는 성우 장세준과 정경애 부부가 두 아들과 함께 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가 하면, 서울대학교 병원 레지던트 2명도 겨우 짬을 내어서 괌으로 휴가를 가던 도중 이 사고로 사망햇습니다.

ⓒ구포역 열차 전복사고.1993년 3월 28일 부산의 구포역 인근에서 일어난 일명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는 부산 구포역 아래서 삼성종합건설은 철도청과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케이블 매설을 위해 발파작업을 시작하엿습니다. 사고현장은 한국전력이 고압 전력 케이블의 매설을 위해서 열차 운행 선로의 노반 밑을 관통하는 지하 전력구 공사를 하던 곳으로서 공사는 삼성종합건설이 맡아서 한진건설에 하청을 준 상태였습니다. 그 결과 지반이 내려앉은 사고지점에 기관차와 발전차, 객차 2량이 거꾸로 처박히면서 머리 부분이 흙속에 파묻히고 전복된 채 휴지조각을 짓이기듯 찌그러졌습니다.

특히 발전차 바로 뒤에 붙어 잇던 6호 객차는 먼저 탈선을 한 발전차의 뒷부분과 부딪치면서 절반가량이 완전히 찌그러졌고 거기에 타고 있던 승객 수십명이 모두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 사고로 인해서 승무원과 승객 78명이 숨지고, 중상자가 54명, 경상자가 144명에 이른 사건입니다.

ⓓ아시아나 항공 733편 추락사고.1993년 7월 26일 오후 2시 20분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후 3시 15분 전남 영암군 삼호읍의 목포공항에 도착 예정이던 아시아나 항공의 OZ733편 B737-5 L9 여객기가 목포공항 착륙을 위해서 접근중에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야산에 추락한 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탑승객 100명, 승무원 6명중 68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당시 악천후로 인해서 시야 제한으로 목포공항에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고기 추락 현장에서 생존한 승객 2명이 기내에서 빠져나온 후 산 아래 마산리 마을까지 내려와서 신고하면서 사고 사실이 알려져 구조작업에 착수햇다고 합니다. 이 사고로 조카와 이모를 읽은 가수 김경호가 추모하기 위해서 1집에 누명 쓴 아이라는 곡으로 이모와 조카를 추모했다고 합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199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에 제 5번 6번 교각 사이에 상부 트럭스 약 50m가 붕괴되면서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사고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서 있던 승용차 2대는 물속으로 빠졌습니다. 지나가던 한송운수 소속의 16번 시내버스는 통과도퉁 뒷바퀴가 붕괴지점에 걸쳐잇다가 차체가 뒤집혀서 추락후 떨어진 상판에 박혀서 찌르러지는 바람에 등교길의 학생들과 승객들이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버스 추락으로 사망한 사람은 29명입니다. 붕괴원인으로는 성수대교는 건설될 당시에 트러스식 다리로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트러스식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운 공법이엇습니다. 결국 붕괴원인으로는 점검 부실과, 내부 결함, 과적차량의 통과 이 3가지 원인이 중첩되면서 성수대교가 붕괴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고는 32명 남 16명, 여 16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어서 총 49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입니다.

ⓕ대구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52분경에 대구광역시 상인동 영남고등학교 사거리 지하철 1호선 2공구 건설공사, 남쪽지점에 잇는 대구백화점 상인지점 신축공사장에서 그라우팅을 위한 천공작업을 위해서 75mm 구멍 31개를 굴착하던 중 실수로 천공기로 도시가스 배관을 관통시켜서 구멍이 뚫림으로 가스가 누출되고 인근 하수구를 통해서 지하철 공사장으로 유입이 되어서 원인을 모르는 불씨에 의해 폭발한 사고입니다.

 

폭발음과 함께 50m의 불기둥이 치솟으며, 이 사고로 등굣길 학생 42명을 포함 101명이 사망, 20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차량통행을 위해 공사장 위에 임시 설치한 복공판 400m가 무너지고, 건물 346채, 자총차 152대가 파손되어 피해액이 540억원에 이른 사고입니다. 당시 저는 평소대로 학교에 일찍 등교해서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자는데 창문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무슨 일인가 햇는데,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접하게되었습니다. 조금만 늦게 등교를 해서 혹시라도 버스안에서 잠을 자다가 상인네거리를 지나쳣다면 저 역시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사건입니다. 당시 주변에는 영남고등학교와 경북기계공고, 달서공업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년 6월 29일에 오후 5시 52분경 서울 서초동에 소재한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의 원인으로 갑자기 붕괴가 되면서 천여명 이상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사망.부상을 당한 대형 사고입니다. 지상 5층, 지하 4층,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수개월 전부터 균열등의 붕괴조짐이 잇었다고 합니다. 1995년 6월 29일 오전에 5층에서 심각한 붕고의 조짐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경영진은 계속 영업을 하면서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인명피해는 사망자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피해가 난 사고입니다. 재산 피해액은 2,700여억원으로 추정. 이 붕괴사고와 관련하여서 삼풍그룹 회장 이준 등 백화점 관계자와 공무원 등 25명이 기소되엇습니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김대한의 방화로 일어난 화재 사건입니다. 2001년 당시 56세이던 김대한은 상반기경 뇌졸증으로 쓰러진후 오른쪽 상.하반신의 장애가 오게되어서 그해 11월에 지적장에 2급을 받습니다.

증세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삶을 비관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게 죽을 생각을 하고 2003년 2월 18일 오전 8시 30분경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 소재 자신의 집 안방에서 1회용 가스라이타 2개를 주머니에 넣고 창고에 잇던 자동차 세척용 샴푸통을 검은색 가방에 넣고 나와 택시를 타고 송현역 부근에서 내려서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 7,500원 상당을 구입하여 삼퓨통에 담습니다.

9시 30분 안심역 방면으로 운행되는 1079열차의 1호차에 탑승합니다. 1079열차가 반월당역을 출발해서 중앙로역에 도착할 무렵 2호차와 가까운 1호차 노약자석 옆 일반석에 앉아잇던 김대한은 1회용 가스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켜려고 망설이던 중에 맞은편에 앉은 승객으로 부터 왜 자꾸 불을 켜려고하느냐는 나무라는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불을 붙이기로 결심, 1회용 가스라이터를 켠 다음 샴푸통에 들어있는 휘발유에 불을 붙입니다. 김대한은 자신의 옷에 불이 붙자 기름이 든 가방을 황급하게 바닥에 던져서 불길은 순식간에 객실내로 번지면서 화재가 확산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사망자가 192명, 부상자 151명으로 총 34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저도 당시 중앙로역을 지나다가 소방차 수십대가 중앙로역에서 화재진압하는걸 본적이 있는데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더라구요. 무슨일이 있나싶엇는데 이런 대형 참사였을줄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알았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폭침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사망자로는 김태석(원사,기관 조정실) 남기훈(원사,상사 식당) 문규석(중사, 휴게실) 박석원(상사, 기관부 침실) 신선준(72포 하부 탄약소,상사) 김종헌(상사, 후타실) 민평기(상사, 승조원 화장실) 강준(상사, 기관부 침실), 최정원(상사, 승조원 화장실) 정종율(상사,기관부 침실) 안경환(상사, 기관부 침실) 박경수(상사, 승조원 화장실) 임재염(중사[진],72포 하부 탄약고)입니다.

또한 방일민(중사, 승조원식당-기관부 침실 통로) 서대호(중사, 승조원 식당-기관부 침실 통로) 이상준(중사, 승조원 식당) 차균석(중사, 유도 행정실) 서승원(중사, 디젤 기관실) 조진영(중사, 기관부 침실) 손수민(중사, 승조원 화장실) 문영욱(중사,제독소) 심영빈(중사, 승조원 화장실) 조정규(중사, 기관창고) 김동진(중사, 후타실) 박보람(중사, 배 밖 연돌) 박성균(중사,자이로실) 이상민(하사.1988년생,승조원 식당) 강현구(하사.기관부 침실) 이용상(하사.후타실) 이상희(하사.기관부 침실) 이상민(1989년생.하사. 기관부 침실) 이재민(하사.기관부 침실) 안동엽(병장.기관부 침실) 박정훈(병장.기관부 침실) 김선명(병장.기관부 침실) 김선호(병장.후타실) 정범구(병장.전기 창고) 조지훈(상병. 승조원 화장실) 나현민(상병. 기관부 침실) 장철희(일병. 기관부 침실)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졋습니다. 이때 생존자로는 중령(최원일) 소령(김덕원) 대위(이채권, 박연수)중위(김광보, 정다운, 박세준) 상사(김병남, 김덕수, 오성탁, 김수길, 허순행, 김정운, 강봉철, 오동환, 정종욱) 중사(이광희, 김현래, 조영연, 손윤식, 송민수, 김현용, 김광규)하사(홍승현, 육현진, 공창표, 이연규, 허향기, 진경섭, 배성모, 전승석, 함은혁, 박현민, 강은강, 정재환, 김효형, 김기택, 서보성, 정주현, 유지욱, 정용호, 라정수, 신은총, 김정원) 병장(전전영, 최광수, 김용현, 강태양, 최성진) 상병(안재근,김윤일, 정현구) 일병(김수철, 오예석, 황보상준) 이병(이태훈, 전환수, 이은수)입니다. 이들에게는 모두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2014년 4월 16일에 오전 8시 50분경에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서 침몰한 사고입니다. 피해로는 전체인원 476명중에서 사망자가 299명, 실종자가 5명, 생존자느 172명인 대형 참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관련 사건은 아직까지도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사건으로서 더이상의 내용은 적지 않겠습니다.




Please Enable JavaScript!
Mohon Aktifkan Javascript![ Enable JavaScrip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