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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

베지밀의 충격적인 비밀(그것이 알고 싶다)

안녕하세요:) 뚱이 블로그입니다.이번 포스팅에서는 베지밀의 충격적인 비밀(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서 알려 드리고자합니다.

유당불내증이란?

소장의 유당분해효소 결핍으로 인해서 유당의 분해와 흡수가 충분이 이루어지질 않아서 대장내에서 유당은 수분을 흡인함과 동시에 대장의 세균성 유당분해에 의해서 포도당 그리고 유산이 되며 이때문에 대장의 연동운동이 자극되어서 설사나 가스에 의한 장 팽만시에 복통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증상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유만 먹으면 폭풍설사를 하는것을 말합니다.

정재원의 유년시절

정재원 회장은 1917년 황해도 은율 산골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두살때에 부친을 여의었습니다. 정회장은 생전에 유년기에 대해서 '어머니,형,누나와 함께 밀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배고픈 시절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어머니는 누에치기,콩밭 매기,품삯일로 자식들의 교육을 뒷바라지 했다고 합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 바람에 의해서 황해도 도립 사범학교 시험을 쳤으나 낙방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듬해 평양 관립 사범학교 시험에 응시를 했으나 또 실패를 맛봅니다.

그 소년은 평양에 홀로 남아서 목욕탕 심부름꾼, 모자가게 점원등을 전전하면서 닥치는대로 일을 했습니다.

 

15살에 친척의 소개로 평양 기성 의학강습소 사환으로 취직을하게 됩니다. 책이 귀한 시절이라서 학생들은 등사기로 직어낸 교제로 공부를햇고, 사환의 일은 매일 잉크를 롤러에 묻혀서 수천장의 교재를 등사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등사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의학 교재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머리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의사가 되는 방법은 의대를 졸업하거나, 의학 강습소를 수료하고 의사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의사 정재원

1930년대 일제시대의 한 강습소에서 일하던 소년의 눈에 하나의 서적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게 뭐야?'하고 바라본 책은 바로 의학서적이었습니다.

의학서적을 보던 소년은 뜬금없게도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하게 되고, 2년후에 2년에 걸친 의사고시의 공부끝에 이 소년은 결국에 전국 최연소 의사가 됩니다.

1937년, 당시 19세이던 그가 최연소 의사고시에 합격을하게 된 것입니다.

의사고시 합격이후, 당시에 명동에 있던 성모병원에서 환자를 보기 시작한 젊은 의사는 '고추가 아플땐 명치를 확인(메모)'

그러던 어느날 한달에 몇번씩 아이들이 원인모를 병으로 실려오게 되고, 며칠 뒤면 죽는일이 비일비제하게 반복해서 발생하게 됩니다.

이 젊은 의사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했지만, 병의 병명도 모른채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고, 그러한 가운데 자신의 무기력함으로 인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는 다짐을 합니다. '내가 이 병을 반드시 치료하고 말겟다!'고 말이죠.

의사의 사명이 무엇이냐? 저것을 치료해봐야겟다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증상의 아이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합닏다. 이건 일주일 한달이 지나도 안나아요. 결국에는 죽습니다. 고칠수가 없거든요.

반드시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아내겟다던 이 젊은 의사 정재원은 20년후 노련한 중년의사로서 성장을 합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에도 그 병에 대해서 만큼 속수무책이었던 의사.

1955년 정 소아과 개원 그리고 유학

소아과를 개원하고 환자를 받기는 시작했으나 여전히 그런 병의 아이들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정재원씨는 영국 런던대학교 소아과로의 유학을 가게 됩니다.

이 당시에 유학이라는 것은 꿈도 못꾸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1960년부터 1963년 당시 44세에게 47세의 대학원에서 유학중이었던 나이에, 런던에도 한국과 똑같은 환자가 때때로 오더랍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속수무책이엇던 그병으로 인해서 다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서 병을 연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의 최신 의학서적들을 공부하던 의사 정재원은 마침내 미국에서 그 병의 이름을 알게 됩니다.

그 병의 이름은 바로 '유당불내증'이었습니다.

위에 첫 도입부에서 유당불내증에 대해서 알려드렸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유당을 제거한 영양식을 개발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바로 그때에 떠올리게 된 것이 콩이엇다고합니다.

옛날 고향에서 어머니가 해준 콩국이 더올랐던 것입니다. 의사 정재원은 자기병원 지하실에 실험실을 차리고 많은 연구끝에 개발한 콩으로 된 유액을그 병이 걸린 아이들에게 먹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신약입니다.'

한병, 두병, 세병, 콩으로 된 유액을 먹기 시작한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은 기력을 찾기 시작하고 세번째 먹이니까 애가 얼굴이 환해지더니 눈을 뜨고 손가락도 움직이더랍니다.

당시에 그 액은 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그 소문을 듣고서는 전국에서 아이 엄마들이 찾아와서 그 액을 달라고 부탁을하기 시작을 합니다.

수요가 부족해서 공급을 못함을 알고서 결국 의사 정재원은 1973년의 57세의 늦은 나이에 회사를 창업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그 약을 대량으로 생산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약, 콩으로 된 유액의 이름이 '베지밀'인 것입니다.

정재원 회장은 1984년에 세계 최대규모의 두유 생산시설을 갖춘 청주공장을 준공하고, 1985년 중앙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사업의 다각화를 꾀하지 않고 꾸준히 두유 생산에만 매진햇다고합니다.

1984년에는 '혜춘장학회'를 설립해서 이후 33년동안이나 약 2350명에게 21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고, 2016년 기준으로 정식품의 매출은 1870억원, 두유 시장 점유율 51%를 기록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개발이 된 두유 베지밀, 그 후 40년뒤 의사는 아직도 그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정식품의 명예회장인 정재원입니다.

그는 2017년 10월 9일, 100세의 나이로 별세를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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