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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부산 사상구 덕포동 김길태 사건 정리

안녕하세요:) 다소 눈살을 찌푸릴만한 사건을 포스팅할려구 합니다. 2010년에 있었던 제2의 조두순 사건으로 기억되는 김길태 사건에 대한 정리입니다.

2010년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에서 있었던 사건의 피의자 김길태에 대해서 살펴보겠읍니다.

김길태 너는 누구냐?

김길태는 1977년생으로 친부모에게서 버림ㅇ르 받아서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위치한 한 교회 앞에 버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아마도 교회측의 사람이 양아들로 키웠다고 합니다. 김길태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운동도 잘하는 아이,활발한 아이였읍니다. 

그러나 중학교때부터는 급격하게 말수가 줄어들게 되고 어두운 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키우던 양부모중 어머니에게 자신이 이미 친자식임을 아닌걸 아는듯이 "난 어디서 왓어?"라면서 수시로 물어보고는 했다고 합니다. 

1993년 부산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하게 되지만,무단 결석을 밥먹듯이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때에 자퇴를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1994년부터 절도를 시작으로해서 폭행과 구타등의 각종 범죄를 저지르면서 이를 계속적으로 반복, 11년동안 교도소를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합니다. 

김길태는 교도소에 있으면서 폭력적인 성향과 반항적인 기질이 두드러졋으며, 정신질환자로 분류가 되어서 특별 치료시설이 있는 진주교도소로 이감이 되기도 합니다. 

감옥에서 2009년 6월 출소한 후에,어느곳하나 기댈곳 없는 고아엿던 김길태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에 옥탑방을 구해서 은폐 생활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7년에는 성폭력 미수에다가 2001년에는 부녀자를 감금하고 성폭*을 하여서 이미 아동을 성폭*하고 살해하기 전에도 범죄자로서는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김길태 사건

2009년 6월에 출소한 그는 은둔자와 범죄자라는 이름답게 늘 혼자 지냈었고, 주위의 이웃들과도 교류가 없는 상태로 지내고 있었읍니다. 

옥탑방에서의 무료한 생활을 줄이기 위해서 그의 이력에도 있듯이 주변 가게들(다방,미용실)등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금품을 갈취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김길태는 2010년 2월 24일 출소한지 6개월만에 당시 중학교에 입학이 예정되었던 여중생을 납치합니다. 피해자이던 C양이 실종된 장소는 2010년 2월 24일 부산 덕포동 집이었읍니다. 

당시 그 동네가 폐쇄회로장치인 CCTV도 잘 없을뿐더러,부유한 동네가 아니어서 대부분은 문을 열어놓거나 잠금장치를 제대로하지 않은채 지낸것이 사건의 발단이엇읍니다.

 

오후 7시경에 어머니와 통화한 C양은 그 통화를 마지막으로해서, 안경과 휴대폰을 두고는 모습을 감추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딸을 찾으려고 실종신고를 하게되는데 이것으로 인해,경찰은 수사를하던 중에 실종 3일만에 2월 27일 공개수사로의 전환을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후 그녀의 시신이 발견이 되는데, 살해가 된 장소는 빈집으로 당시 C양이 살던 집은 재개발지구라 곳곳에 빈집들과 폐가들이 많았으며, C양의 시신은 그녀의 집에서 불과 30미터가 떨어진 곳의 빈집의 물탱크에서 발견되게 됩니다. 

C양의 시신이 발견이 되자, 부검을 시작한 경찰은 C양의 사체에서 김길태의 DNA를 발견하고는, 김길태를 용의자로 확정하고 김길태가 갈만한 곳마다 잠복을 하던중에 12일만에 김길태를 체포하게 됩니다.

주변에는 덕포시장과 덕포여중,유원 아파트가 있는곳입니다. 

사건의 시간별로 전개를 보면

2월 24일에 김길태는 술을 마시고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를 배회합니다. 

그리고 오후 7시에서 9시경에 부산 사상구 덕포동 13세 C양 집 다락방 창문으로 침입해서 혼자 있던 C양을 위협해서 납치합니다. 

김길태에게는 이전에도 가끔 머물렀던 C양 집 인근의 빈집 일명 무당집으로 글고가서 감금한 상태에서 성폭*을하게 됩니다. 이 당시 이양이 비명을지르게되자 손으로 입을 막아서 숨지게 한 후 잠이 듭니다. 

그리고는 잠에서 깬 김길태는 옷이 벗겨진 이양의 사체를 발견하고는 증거를 없애려고 집안에 있던 끈으로 손과 발을 묶고는 전기 메트용 가방에 시신을 넣게됩니다. 

2월 24일 자정, 시신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5미터 정도 떨어진 바로 옆의 빈집 지붕 모서리에 있던 물탱크에 넣고 근처에 있던 시멘트를 물과 섞어서 붓고 블록과 타일등을 함께 넣어서 시신을 유기합니다. 3월 3일에 경찰이 C양 수색중에 김길태를 발견했지만 검거에 실패하게 됩니다. 

7일 뒤인 3월 10일에 경찰을 피해서 사상구 덕포동 일대의 빈집을 옮겨다니면서 지내다면서 경찰을 따돌리다가 덕포시장 인근의 빌라에서 검거가 됩니다.

김길태 검거 순간

경찰이 **빌라 C동에 있는 김길태를 발견합니다. 동시에 김길태는 C동 옥상서 뛰어서 B동으로 도주를합니다. 경찰은 김길태다라고 외치며 뒤쪽기 시작합니다.

 

또 건너뛰어서 A동으로의 도주를 감행합니다. 그리고 A동과 B동 사이의 벽을 타고 1층으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등을 A동 벽에 대고,양팔과 양발을 B동 쪽에 꽉 밀어서 내려오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A동 1층에 도착한 김길태는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갑니다. 이를 발견한 경찰이 접근해서 김길태를 확인후 잡아라고 외치자 다시 도주하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경찰과 맞닥뜨리자 김길태는 경찰의 얼굴을 폭행합니다. 그리고 5미터 가량을 도주하다가 경찰 한명이 몸을 날리고, 그 후 주변에 있던 경찰 2명이 한꺼번에 덮쳐서 검거하게 됩니다.

체포가 된 김길태는 성폭* 사실은 인정을하면서도 살인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자주 진술이 번복되는 등의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갑자기 C양에게는 미안하다면서 울음을 터트리거나, 짜장면을 시켜달라는 등의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김길태는 재판에 넘겨져서 2010년 6월 9일 검찰로부터 사형을 구형받았고,6월 25일에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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