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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

마약왕 이두삼과 실제인물 이황순의 비교 정리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은 2018년 12월에 19일에 개봉했던 마.약왕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영화에서 송강호가 열연한 이두삼이 실제로 있었던 이황순이라는 인물을 재연한 것입니다.

마약왕은 실화랄 바탕으로한 범죄자 검거를 스토리로 만들었읍니다. 주인공인 송강호가 맡은 역할 이두삼은 실제인물인 이황순이라는 부산의 마약범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마약사범은 0.02%로 거의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1980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마약의 제조에서부터 유통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1980년 3월 20일자 경향신문 <초현대판 장비갖춘 한국판 마피아>

한국 마.약 중에서 77%를 차지하는 필.로.폰이라고도 불리우고 히.로.뽕이라고도 불리우는 마.약은 당시 정부의 골치거리였읍니다.

1980년대 마.약.왕 이황순

이황순은 지금은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로 이름이 변경된 황해도에서 탈북하여서 충청도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에 자퇴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1960년대부터 부산에서 지금도 유명한 전국구 조직인 "칠성파"의 조직원으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당시만하더라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이황순은 하급 밀수범 정도였다고 알려져있읍니다.

후에 마.약.왕 이황순은 교도소 생활을 잠시하다가 당시 보안계장을 매수해 폐결핵으로해서 출소하게 됩니다. 원래 사고를치게 되면 집행유예기간 동안은 거주지 제한이 생겨서 해당 거주지 안에서만 살아야하지만, 이황순은 거주지 제한을 어기고 사라져버립니다.

그렇게 한동안 추적에 추적을 거듭했지만 찾지 못했던 이황순은 1975년 부산시의 수영천 상류에 있던 외딴집을 자신의 조카 이름으로하고 명의를 위장해서 새로운 주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곳은 산자락에 위치를해 주택들중에서는 가장 끝집이었고, 근처에는 큰 목재공장이 있어서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위치였다고 합니다.

영화 마약왕 중에 이두삼이 마약을 만드는 장면

처음에는 밀수를하다가 히.로.뽕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 이황순. 그는 처음에는 사다가 팔아 먹었지만 직접 만들어서 팔게되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때는 일본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인해서 일본 국내에서는 제조가 불가능해지게 되어서 일본으로의 수출까지 가능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팔렸었던 히.로.뽕의 일종인 메.스.암.페.타.민

국내 밀매용 외에도 수출용으로 불법 제조가 이루어지면서 큰돈을 만지게 된 이황순입니다.

당시 한국의 히.로.뽕은 일제강점기에서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일본이 활용하면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이 한국의 시.발.점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실제로 팔렸었던 것은 히.로.뽕의 일종인 메.스.암.페.타.민이엇읍니다.

광복 후에 일본에서 단속이 심해지게되면서 마.약 제조공장들이 한국으로 숨어들어서,역으로 일본으로 수출까지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뉴스에서 히.로.뽕 단속 뉴스가 나오고는 했었다고 합니다. 사진은 MBC 당시 사진입니다.

마.약.왕 이황순이 들어선 집은 철로 된 대문을 지나서 다시 10미터가량을 들어가야지만 진짜 대문이 나올 정도로의 보안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잘라서 벽돌담 위에는 철조망과 전선, 감시 카메라까지 설치가 되어 있었으며,현대판의 영화를 보는것처럼 사람이 접근하게 되면 자동으로 경보벨이 울리면서 대형 경비견들이 출동하도록 된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2019년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라 1980년대에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 집은 워낙에 왕래가 없었던 집이라 근처 공자으이 사장이 별장으로 쓰는 용도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마.약.조직원들은 어두운 밤에만 다녔고 낮에 혹시나 다닐때에는 계량기 검침원이나 책 배달부로 위장을하고 그곳을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마.약.왕 이황순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냐는 것이 드러난 부분중 하나인데,이황순은 공장 근처에 장소를 구하게된 것은 폐수로 인해서 히.로.뽕 제조 중에 있을법한 악취를 감추려는 치밀한 계산도 포함이 된 것이었읍니다.

이렇게 마.약.왕 이황순은 영화를 방불캐하는 삶을 살고 있었업니다.

주민등록증은 조직원의 주민등록증에다가 사진을 덧붙여서 위조를 하고,운전면허증도 운전사의 것을 위조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때만하더라도 그들이 분실했다고 하면서 이를 새로 발급 받았다고해서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던 시절이었읍니다.

또 그의 집에는 포장마차도 있었는데 이것은 히.로.뽕의 운반을 위해서 장사꾼으로 위장하기 위한 위장용으로 사용됩니다.

영화와는 다르게 실제인물인 이황순은 미스테리속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당이 배신을하고 고발을 햇었지만 이황순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운전사를 잡은 적은 있었으나 수도검침원으로 위장을 하고 있으니 속아서 놓아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마.약.왕의 실화는 그야말로 지능플레이를 가속화한 범죄로 수사 당국을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와 관련된 공무원들을 매수하기도 합니다.

마.약.감시반원 6명과 경찰관 2명을 배수하고 폭력배도 5명정도 동원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신문에 실린 내용들만 보아도 그의 삶이 얼마나 미스테리하면서 은밀했는지를 알 수 있읍니다.

1980년 3월 20일자 경향신문 내용 중 초현대식 장비갖춘 한국판 마피아라고 실릴만큼 이황순은 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실제 그도 호화주택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이두삼이 폐쇄회로인 CCTV를 통해서 외부를 관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정말 1970년대에서 저런 장비를 집에다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신문 내용으로 부산 넷 검거 히.로.뽕 밀조단 경찰과 총격 대치 3시간이라는 내용입니다.

당시의 이황순의 저택에는 고성능 음파탐지기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대문과 집 주변에는 고성능 음파탐지 시절을 통해 외부인이 집 주위 2미터까지 접근하게 되면 안에서 발자국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되어 있다고 당시에 신문은 보도합니다.

그리고 음지 세계에서의 생활하며 돈 버는 사람답지 않게 그는 양지에서도 활동을 많이했읍니다. 지역사회에 봉사활동도 하고,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에서 연단 귀빈석에 앉을 정도로 정치자급 기부활동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70년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이황순은 도망자신세가 됩니다.

금괴 밀.수로 인해 4년형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수감,1년 만인 1973년 11월 13일에 폐결핵으로 행집행정치 처분을 받게 됩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또 다시 행방을 감추게 됩니다.

그 뒤로부터는 검찰의 추적도 피해서 다닙니다. 당시 이황순만 있던것이 아니라 이황순과 함께 4대 거물로 불리던 신상호는 이황순과 다르게 공개적인 활동이 많은 편이엇읍니다.

동아일보 1980년 9월 20일자를 보면 경상남도 진주시 거주자인 신상호는 지역정화위원 등 여덟개의 사회적인 직함을 가지고 당당한 지방유지 행세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황순보다는 법적으로는 자유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박정희 정권이 무너짐과 동시에 이황순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황순이 실제로 체포가 된 때는 1979년 10.26사태 즉 박정희 암살 직후인 1980년 3월 19일입니다. 이황순은 체포당시에도 군경과 3시간의 총격전을 벌인 끝에 자살을 시도하던중에 체포가 되게 됩니다.

체포 당시에는 오른쪽 어깨에 총알 20알이 박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1년 4월 28일 이황순은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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