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폭력

나주 초등생 성폭행 고종석 사건 정리

안녕하세요:) 2012년에 있었던 충격적인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에 대한 정리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서 이런짓을 할 수 있나 싶을정도의 사건입니다.

2012년 8월 30일 전라남도 나주에는 태풍 덴빈의 영향권으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읍니다.

당시 나주에 위치한 상가형 주택에 살던 8살의 B양은 거실에서 자신의 언니,오빠,동생과 함께 잠자고 있었읍니다.

B양의 집 구조는 원래 분식접을하던 자리에 가게를 개조해서 거실로 쓰고 있는 상태로, 평소에는 출입문을 잠그지 않은채로 잠이 들었다고합니다. 밤 11시경 37살의 어머니인 A씨가 드라마를 본 후에 아이들이 자는것을 확인하고 컴퓨터가 필요한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기 위해서 근처의 PC방에 가 잇었다고 합니다.

오전 1시 30분

B양의 집으로 침입을 한 23살의 고종석. 그는 거실 입구에서 자던 B양을 이불채로 납치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곤한 잠에 빠졌었던 B양이 누군가가 자신을 안고 가는것을 느끼고는 잠에서 깻다고 합니다. K가 자신을 이불에 싸서 골목길로 접어들게 되자 공포에 질리게 된 B양이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게 됩니다.

 

K는 "삼촌인데 어때, 같이 가자"라면서 200미터 떨어진 영산대교의 밑으로 B양을 데려갑니다. 그리고 K는 B양의 옷을 벗긴후에 성폭행합니다.

B양이 반항을 하게되자 이빨로 팔목과 성기 가슴과 볼 등을 심하게 물어뜯기도 합니다. K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않고 B양을 살해할 목적으로 목을 조르고, 의식을 잃고 쓰러진 B양이 죽은줄 알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B양의 엄마가 집에 들어온 시간은 새벽 3시 30분경. B양이 안방에 아빠 곁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한 A씨는 별 의심없이 잠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딸이 없어진 사실을 아침에 알게된 B양의 부모는 아이를 찾아나서게 되고,오전 7시 30분경 경찰에 실종신고를하게 됩니다.

B양의 직장은 파열이 되고 출혈이 낭자한 상황에서 이불을 안고 알몸인 채로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평소라면 금방 도착할 거리지만 영산강 둑에 그대로 쓰러진채로 정신을 잃고 맙니다.

나주경찰서 강력팀 소속의 형사들과 과학수사대,그리고 전경 50명을 현장에 비치하고 순천에서 전경 2개중대를 지원받아서 수색을 벌이게 됩니다.

 

수색에 나선 200명은 B양의 집으로부터해서 영산강 일대를 거슬러 올라가보지만 B양을 찾지 못했다고합니다.

오후 1시경 전경대원 한명이 집 가까이에서 B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발견 당시 B양의 상태는 인도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쓴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B양은 추위와 몸이 찢어지는 고통속에서 12시간 가량을 공포와 싸워야만 했읍니다.

경찰은 코앞에 있던 B양을 찾지 못해서 시간만 허비하게 되엇고, 범인은 차량으로 이동을 했을 것으로 판단,집과 먼 거리로 수색범위를 확대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병원으로 이송이된 B양은 성폭행으로 직장이 파열되었으며, 신체의 중요 부위가 5센티미터가량 찢어져 있는 등의 상해를 입고, 2시간여에 걸친 수술을 받게 됩니다.

경찰은 B양으로부터 K의 인상착의,옷차림을 확보하게 됩니다.

 

주변의 PC방을 포함한 유흥주점을 수사하던 중 한 PC방 사장으로부터 손님 중한명이 게임을하다가 새벽 1시경에 나갓으며, 피해자가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와 비슷하다는 제보를 받게됩니다.

그리고 경찰은 K가 사용한 컴퓨터 기록을 조회해 인적사항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2년 8월 31일 오후 1시가 넘은 시각 K가 자주 가는 순천시 풍덕동에 위치한 PC방에 잠복했다가 게임을 하러 온 K를 검거하게 됩니다.

놀라운 사실

K는 B양의 부모와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고 합니다.

K는 2010년경에 건설현장에서 알게 된 B양의 아버지를 매형으로,B양의 엄마를 누나라고 부르는 관계였다고 합니다. B양의 어머니도 K와는 PC방에서 자주 만나던 사이로 사건 전에도 몇차례 B양의 집에 간적이 잇어서 집안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종석 너는 누구냐?

순천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전라남도 완도가 고향인 고종석은 결손 가정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7살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재혼했으며 의붓어머니는 고종석을 학대했다고 합니다.

밥을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밥상을 걷어차는가하면, 학교에 갈 차비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붓어머니에게 폭행을 당해서 고막이 파열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고종석이 삐뚤어지기 시작합니다. 중학생이던 시절에는 급식비를 내지 못하게 되자 학교를 중퇴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가출해서 나주의 가구 공장에서 일을하게 됩니다. 그렇게 착실하게 돈을 모으면서 살았지만 2004년에는 자신의 부모에게 모은 돈 500만원을 강제로 빼앗기게 됩니다.

20대 초에는 스티로폼 생산 공장과 보길도 인근 김 양식장등에서 일했지만, 그의 부모가 일한 대가를 가로채기도 하고 물건으로 받아가 버리기가 일수였읍니다.

고종석은 더 이상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정한 주거지 없이 나주와 순천을 오고가면서 막노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돈을 버는 족족 그는 술값과 PC방에서 게임비로 탕진하게 됩니다. 절도죄가 한건 있기는 했지만 성범죄 전력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 아동 포*노물에 심취해 잇었다고 합니다.

모텔이나 PC방에서 일본 야동 포*노 등을 즐겨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인근 집창촌에 가서 간음도 해온것으로 드러납니다.

고종석은 평소에도 어린 여자아이와 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했다고 진술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고종석이 노린것은 B양이 아닌 큰언니인 13살인 F양을 노린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사건 당일에 F양은 거실 안쪽에서 잡이 들었고, B양이 거실 입구에서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종석은 B양이 거실의 끝자리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과, 그다지 저항을 하지 않을것 같아서 이불채로 들고 나왔다고 진술합니다.

이로 인해서 1심과 2심에서 잔혹성과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범행을 고려해서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조치해서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 무기징역+전자발찌 부착 30년,신상정보 공개 10년,약물치료로 화학적거세 5년을 선고합니다.대법원에서 화학적거세가 확정이 된 첫사례라고 합니다.


Please Enable JavaScript!
Mohon Aktifkan Javascript![ Enable JavaScript ]